서울 종로구 송해길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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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5세로 별세한 송해 선생님이 생전 '공평'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13일 고 (故) 송해의 평전인 '나는 딴따라다'(2015)의 저자이자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오민석 교수가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송해와 관련된 여러 일화를 소개했다.

이날 오교수는 처음 송해의 평전을 쓰겠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옛날에는 대중문화 하면 싸구려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대중문화보다 더 막강한 영향을 가진 문화 영역이 없다. 송해 선생님도 처음 평전을 제안했을 때 '대학교수가 나 같은 딴따라 얘기를 무슨 가치가 있나'라고 하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에 오교수는 "선생님이 미국이나 유럽처럼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이나 연구가 굉장히 축적돼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벌서 평전이 열 몇 권이 나왔을 것"이라며 설득에 나섰고 "유랑극단 시절부터 한류까지, 그다음에 한국 방송사 라디오, 흑백, 컬러TV 이렇게 이어지는 건 굉장히 중요한 기록, 후배들을 위해 기록해야 된다"고 하자 송해가 승낙을 했다고 전했다.

 

사진= CBS라디오

오민석 교수에 따르면 1년간 동행하면서 특히 송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공평하게'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령 전국노래자랑 녹화할 때 지역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들에게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 자리 없으면 중간에 앉으라고 하고 공평해야 한다. 이 무대의 주인은 행정가들이 아니라 국민들이고 시민들이다"라고 했던 송해의 말을 떠올렸다.

이와 관련된 일화로 “충청도 어느 지역에서 리허설을 하는데, 공무원들이 관객들 앉는 플라스틱 의자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며 “물어보니까 공무원들이 ‘여기 군수님 앉아야 하고, 구의원 앉아야 한다’고 하니까 그냥 소리를 지르셨다. (송해 선생님이) ‘당장 치워라’ ‘지금 뭐하는 짓이냐. 당신들이 제일 앞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으면 관객 국민이 다 긴장한다. 앉고 싶으면 저 뒤에 아무 데나 퍼져 앉아라. 특석이라는 건 없다’고 하셨다. 저는 그 위계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게 아주 좋았다”고 덧붙였다.

 

대구 달성군 옥연지 송해기념관

또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몇백 명이 졸지에 물에 수장된 심각한 사태에 ‘전국노래자랑’ 하면서 웃고 이게 안 되니까 KBS에서 두세 달 방영 자체를 중단한 적 있다”면서 “녹화를 안 하니 악단 멤버들이 출연료를 못 받지 않나. 생활이 안 됐다”고 했다.

이에 “이분(송해)이 올라가서 담판을 지었다. ‘이 사람들 먹고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그동안 노래자랑에 이바지한 게 얼마인데 배려해줘라. 돈 얼마나 된다고 그러냐’고 해서 밀린 출연료를 다 받았다. 대단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송해는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질문에 “무대 위와 아래가 똑같은 건 다정다감하다는 거다. 정이 그렇게 많다. 사람을 하나하나 디테일까지 배려하신다. 그건 실제로 무대 밖에서 더 깊고 심하시다”고 추억했다.

한편 송해는 지난 8일 오전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유해는 생전에 '제2고향'이라고 여기던 대구 달성군의 송해공원에 안장된 부인 석옥이 곁에 안치됐다.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아 34년간 이끌었고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 부문으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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